9월 21일 토요일에 아일랜드에 도착해서는 9월 23일 월요일부터 바로 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원래는 일주일 정도 여유 찾고 시작해야지 했던건데, 아무래도 한적한 더블린에서는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심심할거 같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기 때문에, 그냥 가자마자 바로 시작했더랬다. 그렇게 지금 거의 두달 정도가 지났고 뭐 2주는 파리 때문에 학원을 못갔다고 치면 한달 반정도를 학원에 다닌게 되는데 그냥 다짜고짜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학원 다니기 싫다.


 어학원, 말 그대로 언어를 배우는 곳이다.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곳. 영어권 나라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러 온 사람이 대부분이고, 영어권 나라기 때문에 당연히 영어를 자연스레 쓰게 되는 곳이다. 유럽 각지에서, 전 세계 각지에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넘어온 사람들.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안부터 유러피안, 브라질리안, 기타 등등 온갖 국가에서 넘어온다. 굳이 외국까지 와서 한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진 않았고, 아일랜드에 오면 꼭 아이리쉬를 포함한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학원 Level test를 하고 나서 나는 B2 레벨((Upper-Intermediate)을 받았고, 그 와중에 기대하지 않게 한국인이 많아서 적잖이 당황한 나였다.아일랜드는 당연히 낯선 나라라고 생각해서 한국인이 별로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왠걸. 처음 학원 가고 그 다음주까지 같은반에 한국인이 반절이 넘었다. 9명중에 6명이 한국인이라니.  그나마 납득이 되는 이유라면 한국인의 종특인 시험 잘보기...가 이유였달까. 나 또한 그랬고. 말은 못하는거 같은데 시험은 잘 본다. 한국인은 피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왔는데, 반에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니. 나를 왜 시험에 들게 하시나이까... 그나마 친했던 이탈리안 친구들이 있었으나, 하위반에서 있는 친구들이라 소통 하는데에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자기들끼리 이탈리아 어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내가 영어로 말하게 반강제로 시키긴 했지만(...) 


 여기서 두번째 문제가 나타났다. 그 친했던 친구들이 다 본국으로 돌아가버렸다. 유러피안 친구들이다. 외국인 친구들이다. 유러피안의 경우 짧은 비행시간과 저렴한 가격으로 이동이 정말 쉽다. 그래서 잠깐씩 왔다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짧게는 2주, 길어야 한달, 한달 반. 조금 친해진거 같다 싶으면 가버리고, 친해지고 싶다 하면 가버린다. 그리고는 매주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그나마 그들의 시간도 짧고 또 짧다. 친해지려고 쏟아 부었던 시간과 노력이 빛을 잃어버리는 거다. 물론 본국으로 돌아간다해도 연락이야 계속 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언제 다시 볼 지 모를 '타국'의 친구기 때문에 같이 시간을 공유하고 친한 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아버리는거다. 이러한 상황에 적잖이 상처를 받았고, 감정적인 소모가 너무 크다는걸 알아버렸다. 친구를 사귀려면 이름이 뭐야? 얼마나 있을 예정이야? 오기전엔 뭐했어? 이런 사사로운 질문들을 다시 던지고 다시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또 가버리겠지만.


 요즘엔 또 클래스에 사람이 엄청 많아졌다. 출석률이 좋은날엔 최대 15명정도가 한 반에 있는거 같았다. 그러다보니 말 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가고, Pair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잦아지고, 가끔 자기들끼리 친한 사람이 있으면 종종 수업 분위기 마저 잡담하느라 흐려지는 경우가 다반사가 되었다. 내가 하는 만큼 된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이기적이 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 느낌이랄까. 학생끼리 짝지어서 이야기 하게 하는 Pair 수업은 정말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난데, 우리 다 영어 배우러 온 학생들이다. 잘못된 영어를 쓰는 학생들끼리 Pair 수업을 해서 어쩌자는걸까. 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듣고 챙겨주긴 하지만 그건 그때 뿐, 선생님이 체크해주지 않는 한 도움이 되기엔 어려운 수업 방식이 되어 버린다. 학생이 많아지니 어쩔 수 없는거라 하겠지.


 영어를 배우고 친구를 사귀기에는 어학원이 매우 좋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았던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참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나름 비싼돈 주고 등록했는데, 내가 적응을 못하는건지 상황이 나를 적응하지 못하게 만든건지 혼란스럽기까지 할 지경이다. 그래서 사실 요즘엔 학원 갈 생각이 잘 안든다. 물론 주제를 주고 토론하거나 의견을 내는 방식의 수업도 하고는 있지만 혼자 조용히 공부하고 집주인 아줌마랑 얘기하고 버스 기다리는 모르는 사람과 일상적이거나 뜬금없는 얘기를 나누고, 가게나 은행에서 직원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이 좀 더 공부 하는 느낌이랄까. 주제만 있다면 사실 모르는 사람이랑도 얘기 할 수 있을거 같은데 말이다.


 암튼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타지에서, 혼자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져서 복잡하기도 하고, 이것도 경험이려니 하고 좋게 생각하고 있는중인데 잘 모르겠다. 차라리 일하면서 만나는 친구가 오히려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거 같은 막연한 기대감도 드는게 아무래도 일을 하는거니까 오랜시간을 같이 할 수 있을거라서. 어학원에서 만나 가볍게 놀고 술먹으러 다니고 하는 그런 친구보다 술을 먹더라도 마음 터놓고 이런저런 얘기 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한데. 내가 너무 짧게 생각하고 온거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또 하나 배웠다. 파트타임이든 풀타임이든 일 열심히 구해야겠다. 

 그전에, 생일 전까지는 탱자탱자 놀아야지. 셀프 생일선물로. 짧게 쓸랬는데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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